원신) 인형의 무기
2023.05.13 00:05

인형의 신체는 인간의 형태를 충실하게 모방했다.

겉보기에는 그의 피부는 그저 희고 연약한 상처 하나 없는 도련님의 것이었으나 실상은 영원을 추구하며 만들어져 작은 흠집을 내는 것조차 어려운 소재로 되어 있다. 살가죽이라기보다 차라리 갑옷에 가까운 피부 아래로는 무게는 가벼우나 강철과 부딪쳐도 부러지지 않는 소재로 뼈대를 만들고 관절을 이었다.

그렇기에 인형의 몸은 그 자체로 무기가 될 수 있다. 그의 팔다리는 어떤 날붙이도 막아내며, 그의 손가락은 생물의 피부며 장기 따위는 쉽게 꿰뚫고 찢고 뜯어낼 수 있었다.

그 위에 번개 원소를 두르면 어떠할까? 당연하게도 상대는 살을 꿰뚫린 후에 번개에 지져지기까지 하면 버텨낼 재간이 있을 리 없다.

「산병」 스카라무슈가 나선 전장은 언제나 단백질 타는 냄새가 났다.

"왜 무기를 쓰지 않는 거지? 온몸에 피칠갑을 하면 불쾌하지 않나?"

어느날 함께 임무에 나가 후방에서 지휘를 맡았던 「숙녀」 시뇨라가, 별동대로서 홀로 적진의 중심에 잠입해 적장의 거처를 뒤집고 온 스카라무슈에게 물었다. 정맥을 잡아 뜯었는지 피를 흠뻑 뒤집어 쓴 스카라무슈는 부하가 건낸 물통을 들어 그대로 제 머리 위로 쏟아부었다. 묻어있던 피며 살점이 물에 쓸려 내려갔다. 바닥을 핏물로 흥건하게 적신 스카라무슈는 시뇨라에게 대답했다. 창백한 흰 얼굴에 눈가만큼은 여전히 붉은 산병의 눈빛이 서늘했다.

"무기 따위 필요 없어."
"아, 그래."

그녀는 그 이상의 관심은 주지 않았다. 어차피 친절한 대답이 돌아올 상대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신경 쓰여 한 번 물어보았을 뿐 스몰 토크 이상의 의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스카라무슈와 시뇨라는 사무적인 관계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그녀는 호기심도 갖지 않았다.

"그래도 집행관 품위가 있으니 적당히 해."
"흥. 부족한 너보다야 품위를 지키고 있으니 네 걱정이나 하시지."

시뇨라는 상대하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휙 돌리고 자리를 떴다. 곁에서 빈 물통을 들고 서있던 부하가 슬그머니 보고했다.

"목욕물을 준비해두었습니다, 장관님."
"…그래. 바로 가겠다."
"그 후 0445에 회의가 잡혀있습니다."

조심스럽게 폭력에 대비하며 몸을 긴장시키고는 목욕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음을 주지시키는 부하의 말에 스카라무슈는 별다른 반응도 하지 않고 그저 걷는 속도만 올렸다.


인형의 신체란 곧 무기와 같으니,
나는 결코 검 따위를 손에 쥐지 않을 것이다

*무기를 보면 타타라스나에서의 배신과 창조주를 떠올리게 되어 지극히 불쾌하여 무기 없이 싸우는 전투스타일을 고수하는 스카라무슈
2023.05.13 00:11 R

배신당한 후로 검을 사용한 건 뇌전오전 사건 때 정도면 좋겠네... 같은 생각이나 하기
2023.05.13 00:17 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