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카에데하라 카즈하. 나는 방랑자이고 또한 너의 원수야. 그러니 처음 만나 반갑다는 인사는 하지 않을게."
소년은 자신의 표정을 가려주던 삿갓을 벗어 들고 카즈하와 눈을 마주쳤다. 비인간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이목구비의 소년이었다. 위대하신 나루카미 쇼군을 떠올리게 만드는 얼굴도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 인간과 달리 고요한 이질적인 기척이 누구보다도 쇼군과 매우 닮았다. 소년과 쇼군 사이에 깊은 관련이 있으리란 걸 미리 듣지 않아도 알아챘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행자는 조심스럽게 방랑자와의 만남을 주선해주며 그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했고, 카즈하를 왜 만나고 싶어하는지에 대해 언질해주었더랬다.
가부키모노와 타타라스나, 쿠니쿠즈시와 뇌전오전의 몰락, 스카라무슈가 자신을 지우면서까지 시도한 역사 개변과 그 실패에 이르기까지 여행자의 이야기는 여태 카즈하가 알고 있던 가문의 일과 다른 것이었다.
여행자는 그것이 고쳐지지 않은 「진실」이라고 말했다.
역사가 수정될 수 있는 것인가? 허무맹랑하게까지도 느껴질 이야기지만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음은 바로 알았다.
얼굴을 마주보게 된 소년에게서 너무나도 강하게 전해지는 감정들이 의심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죄책감과 애정, 그리고 날카롭게 갈린 대검과 같은 책임감.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고 그에 상응하는 복수의 칼날까지 자신에게 지운 결심. 결코 거짓으로 꾸며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스스로의 죄를 고백한 소년은 가장 무방비하게 서서는 입을 열었다.
"너에게는 복수할 권리가 있어."
"…난 복수할 생각이 없어."
"어째서 복수하지 않아? 나를 원망한 적이 한 번도 없어? 네 삶에 불행은 심은 나에게 그 죗값을 치르게 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아?"
"원망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는 말할 수 없어.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인지 생각해본 적이 왜 없겠어?"
"그렇다면 왜?"
"과거를 생각하며 복수를 쫓기보다는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며 나아가고 싶으니까. 일심의 단조 기술도 되찾았으니, 검을 만드는 기술에 집중해도 나의 삶은 모자랄 거야. 당신야말로 왜 내가 반드시 복수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해?"
"이 세상에 대가가 없는 일은 없어. 내가 저지른 악행에 대한 업은 나에게 돌아와야 마땅해."
소년이 이야기한 세상은 차갑기만한 곳이었다. 긴 세월을 고독하게 존재하는 인형이 눈의 나라에서 터득한 삶의 방식이란 그런 것이었다. 당연한 이치를 논하듯 소년의 말에는 한 점 흔들림 없었다.
"당신은 거울과 같은 세상을 살았구나.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도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점은 이해해. 하지만 내가 겪은 세상은 그렇게 공평하지 않았어. 주고도 받지 못하는가 하면,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할 수도 있지.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고. 나 또한 거울이 아니야. 나는 나와 관련된 진실을 알게된 것으로 만족해. 당신에게 화를 낼 생각도, 복수라는 이름으로 칼을 휘두를 생각도 없어."
"……."
소년은 입을 꾹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는 것처럼 혼란스러워 보이기도 했고, 너무나 화가 나서 할 말을 잊은 것도 같았으며, 한없이 슬퍼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