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신) 나에게 존재한다는 일은 그저 고통이었어.
2023.01.31 18:52

정말 그렇게 생각해?

잠깐의 행복조차 내 존재로 인해 그 주위까지 망가뜨리고 불행해졌어. 그리고 그건 행복 이상으로 날 괴롭게 했지. 내가 그들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차경의 저택에서 그저 조용히 고요에 참겨있었더라면, 내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불행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그들과 내가 엮이지 않고 행복해지길 바랐고, 세상에서 나를 지웠어. 나로 인한 불행으로부터 그들을 구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세계수는 나의 빈 자리를 기어이 다른 인간으로 채워서 친구들에게 불행을 주었어. 그게 무엇을 뜻한다고 생각해?

네 탓이 아닌 일이었던 거야.

하. 작은 쿠사나리 화신과 같은 소릴 하는군. 내가 있어도 없어도 일어날 일이었다면, 애초에 나는 존재할 이유가 있는 걸까? 신은 제 손으로 만든 내가 약하다며 버렸고, 세계수는 내 존재 따위에 가치를 두지 않았지. 쓸모 없고 가치 없어 잊혀진 인형이 덩그러니 세상에 놓여있는 것보다, 나를 잘게 부수어 나를 원수로 생각할 이들에게 복수를 완수하게 만들어주는 편이 나아.

너에게 복수할 인간은 이제 없어.

내 눈 앞에 있잖아.

나는 너에게 복수하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맞아. 너는 그렇게 말했지. 하지만 그것이 너의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준다면 그것 또한 네가 나에게 하는 복수가 될 거야. 나는 너에게 갚지 못할 자비를 받고, 그 무게 짓눌려 나에게 주어진 시간만큼 고통스럽게 마모되겠지. 나의 몸이 아니라 정신을 부수는 복수가 될 테니까. 신조차 두려워 한 마모인데, 나 같은 작은 인형 따위는 결국에 고장나는 결말로 치달을 거야.

……나는 네가 그렇게 망가지길 원한 게 아니야. 나는,

넌 다정한 아이니까 인형 따위에게도 그렇게 마음을 쓰는 거란다. 넌 니와를 꼭 닮았어. 너는 행복해져. 나를 죽이는 것이 너를 후련하게 한다면 그렇게 해. 나를 살리는 것이 너를 만족스럽게 살아가게 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해야지. 너는 그래야만 해.

너 또한 티바트에 살아가는 주민이자 인간이야. 너 또한 행복해져야 해.

나는 인형이야.

너는 인간이야. 즐거운 일에는 웃고, 슬픈 일에는 눈물을 흘려..이치에 맞지 않아 억울한 일에는 화를 내고, 추억을 떠올릴 때는 그리움에 잠기지. 나와 똑같잖아.

…….

지금도 그래. 너는 나를 보고 「니와」라는 사람을 떠올리고 그리워하고 있잖아. 네가 그렇게 말하는 「니와」도 분명 너에게 같은 말을 해줄 거야. 네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행복하길 바란다고.

…….

이곳에는 반박할 인형이 남지 않았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소년과 눈물을 닦아주는 소년만이 있기 때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