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덴 에이랑 방랑자가 천수각 높은 층의 창가에 나란히 정좌하고 앉아서 이나즈마 조용히 내려다보는 거 보고 싶다... 에서 시작한 썰 메모
에이는 경단을 한입씩 먹으며, 방랑자는 차를 홀짝이며, 똑같은 자세로 앉아서 대화도 없이 그저 고요한 두 사람... 이런 장면이 불쑥 떠올랐는데 왜 둘이 만나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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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코토를 닮은 얼굴을 한 소년이 바람을 휘감고 스쳐가는 것을 무심코 붙잡은 에이로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 에이가 소년을 붙잡고 만 것은 그의 뒷목에서 빛나는 문양 때문이었고, 뇌신의 존재를 진작에 눈치챘던 방랑자는 어차피 자신을 잊었을 창조주를 피해가는 것도 우스워 그냥 빠르게 지나치려고 했을 뿐인데 손목을 붙잡혀서 내심 당황하고 있을듯...
"당신은 누구인가요?" 먼저 묻는 건 에이겠지. 방랑자는 그 말에 자신을 만든 것조차 잊은 건 확실한데도 이 신이 왜 자신을 붙잡은 건지 의아할 거야. 방랑자는 일단 바람을 타고 떠있던 발을 땅에 붙이고 잡히지 않은 손으로 삿갓을 내려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겠지. 항상 달고다니던 금빛 깃털 장식의 고리가 츄츄족과의 전투중에 떨어진 것을 고치지 못해 아직 품 속 주머니에 넣어두고 있던 것을 다행이라고 여기며 입을 열었어.
"저는 그저 지나가던 방랑자입니다, 쇼군님." 라이덴 에이를 보면 한 마디 비꼬아주고 싶은 마음도 없진 않았지만, 지금은 그녀의 손에 잡힌 손목을 빼고 싶은 마음이 더 클 거야. 단순한 접촉이지만 인형을 만들어낸 그녀라면 많은 것을 알아챌 수 있을 테니까.
"당신… 인형이군요. 지금 이 정도의 인형을 만들 수 있는 존재가 저 말고도 또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어려운데, 저는 당신을 만든 기억이 없어요. 그런데도 당신의 뒷목에는 저와 관련된 문양이 선명하고, 당신의 얼굴은 이 세상에 없는 가족을 닮았어요."
에이는 자신이 읊은 정보에서 도출되는 결론을 무시할 수 없었어.
"…당신을 만든 것은 저로군요."
방랑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얼굴은 삿갓에 가려 표정을 살필 수 없었지만 에이는 자신이 붙잡고 있는 손목에서 느껴지는 인형 특유의 관절 형태에서 제 손을 탔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을 거야. 방랑자는 자신의 손목을 주물거리는 중인 에이를 보며 그녀를 모른 척 지나가기엔 그녀가 너무나 많은 것을 알아냈을 것임을 느끼고 있겠지.
"미안해요. 당신을 기억하지 못 해서. 아무래도 저와 당신 사이에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할 것 같아요."
손목을 놔주기는 커녕 자신을 잡아 끌고 천수각으로 걸어가는 그녀를, 손목울 감싼 그녀의 온기를 방랑자는 뿌리칠 수가 없었어. 그렇게 천수각에 올라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다과를 내오라 했을 때 여기까지 오는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방랑자가 "난 단 것이 싫어. 차 한 잔이면 족해." 겨우 입을 뗐지. 에이는 자신이 만든 인형이 단 것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드러냈어. 방랑자는 그 얼굴에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겨우 참고 고개를 돌렸지. 에이에게는 웃음을 참느라 찡그린 방랑자의 표정을 보고 자신이 만든 사실조차 잊었으면서 취향이 제 뜻과 다른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모습으로 그를 불쾌하게 만든 것 같이 다가왔을 거야.
여행자도, 미코도, 그리고 마코토도.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그랬어. 그리고 지금 불쾌해하는 그에게 과거를 묻는 것은 결코 좋은 기회가 아니라는 게 확실했지.
"우선은 다과와 차를 즐기고 나서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방랑자는 대답하지 않았고, 에이는 소년이 여전히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가 기분을 스스로 달래기를 기다리며 입을 다물고 생각을 정리하기로 했어.
마코토를 닮은 얼굴과 뇌신의 문양, 그리고 익숙한 형태의 인형 관절을 보면 방랑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소년은 자신이 만들어낸 인형임이 틀림 없었어. 켄리아의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었지만 인형 쇼군의 영원한 구동을 위해 신체의 내구성을 완벽하게 하고자 연구에 개량을 거듭했고, 자기 손으로 만든 인형은 켄리아의 것과는 다른 특징을 몇 가지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지. 물론 소년의 관절은 인형 쇼군의 것만큼 개량된 것은 아니야. 오히려 그것보다는 투박한, 좀 더 날 것의 아이디어에 가까운 형태였지. 순서를 따진다면 이 소년은 인형 쇼군보다 먼저 제작되었을 거야. 재료도 인형 쇼군과 달리 자신의 몸이 아닌 다른 것을 썼어. 굳이 따지자면 쇼군을 만들기 전 연습, 혹은 설계 확인을 위해 제작한 프로토 타입일 가능성이 커. 하지만 그렇게 만든 인형을 폐기하지도 않았으면서, 곁에 두지도 않았고, 심지어 만들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는 것이 그녀의 마음에 걸렸어.
인형 쇼군을 만들기 전이라면 수백 년 전인데, 이 어린 모습의 인형은 제가 일심정토에 틀어박혀 존재를 잊고 있던 동안 내내 티바트를 떠돈 것일까요? 성인의 모습도 아닌데다 신의 힘조차 나눠 받지 못한 인형이 돌아다니기에 험난했을 것이 틀림 없어요. 그런데도 그는 저에게 도움을 구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는 제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아는 눈치니까요.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에이는 제 몫의 삼색경단을 다 먹은 후에도 이 작은 인형에게 자신이 무슨 말을 꺼내야할지 알 수가 없었어. 묻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
방랑자 역시 아주 조금씩 차를 나눠 마시며 의도적으로 대화를 피하고 있었고.
그들 사이에 말문이 트이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듯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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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 인형의 외형과 지능은 에이를 본떠 만들지 않았음... 에이가 쌍둥이 자매의 죽음을 계기로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정황이랑 에이 본인을 본떠 만들진 않았지만 스카라무슈랑 에이가 닮았다는 걸 생각하면 스카라무슈는... 에이가 잃어버린 마코토를 모델로 만들었던 게 아닐까...? 라는 동인설정 함유된 어쩌구
- 방랑자는 라이덴 에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 에이는 프로토 타입 인형을 왜 굳이 소년의 모습으로 빚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