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생과의 저녁 약속을 위해 정시에 맞추어 영웅청을 나왔다. 해가 지지 않은 시각에 거리를 지나니 항상 닫혀있던 가게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왔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가볍게 목례를 하며 지나갈 뿐, 일부러 말을 걸지 않았다. 시민들의 배려에 여유롭게 가게들을 살피며 길을 걸었다.
"꽃집?"
이제 막 달았는지 먼지도 쌓이지 않은 새 간판과 손자국 하나 없는 깨끗한 유리문이 가게의 개업이 최근임을 보여주었다. 활짝 열린 문 너머로 보이는 가게 안에는 작은 화분들이 진열대에 옹기종기 놓여있고, 그 안쪽의 유리 케이스 안에는 꽃다발에 들어갈 꽃들이 꽂혀 있었다. 그 중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선명한 붉은 꽃잎이 탐스럽게 피어난 장미들이었다.
"어서오세요~"
"장미꽃으로 꽃다발을 하나 만드려고 합니다."
"어머, VI님 안녕하세요! 선물용으로 만드시나요?"
"네."
꽃병의 물을 갈아주고 있던 주인 아가씨가 나를 반갑게 맞아주고는 카운터 앞에 마련된 작은 의자에 안내했다. 그러고는 나에게 꽃다발을 만들기 위한 질문들 던지며 형태를 잡았다. 장미는 어떤 색깔로 찾으세요? 몇 송이 정도 넣으실 건가요? 다른 꽃도 섞어서 꾸미실 건가요? 꽃다발을 감싸는 포장지는 어떤 색깔을 원하세요? 그녀의 능숙한 유도에 따라 대답하고 계산까지 마쳤을 때엔 내 품에 붉은 장미 열두 송이가 푸른 잎과 함께 흰 포장지에 싸여 안겨 있었다.
꽃다발을 안고 집에 들어서자 바카리오가 늘어진 목소리로 "어서와~"하고 인사를 건넸다. 바카리오의 목소리가 맞아주며 불이 환하게 켜진 집은 더 이상 찬 공기가 감도는 삭막한 공간이 아니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 손을 흔드는 바카리오에게 들고 있던 꽃다발은 안겨주었다.
"무슨 장미 꽃다발이야? 오늘 무슨 행사라도 있었어?"
"아니. 퇴근길에 꽃집에서 샀어."
"…나 주려고?"
"그래. 넥타르를 몸에 두르고 싸우는 너를 이미지 했거든. 붉은 넥타르에 흰 망토가 디오니소스XII의 트레이드마크였잖니."
내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린 바카리오의 얼굴이 새빨개지는데는 잠깐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이 부끄럼쟁이 동생은 꽃다발을 꼬옥 안으며 겨우 입을 열었다.
"……고마워."
"내가 가장 사랑하는 히어로에게 주는 선물이야."
"형아가 그렇게 말하면 나는 힘낼 수밖에 없잖아~"
"그러면 파워풀원부터 끊는 것에 힘내볼까?"
"그건 좀~"
부끄러워하면서도 꽃다발을 소중히 품에 안고 있는 너는 히어로로서 모두를 지키며 그렇게 지내고 싶었을 텐데도 너는, 단 한 순간을 위해서 히어로가 아니게 되었노라 모습을 꾸미고 거짓으로 자신을 감추었다. 켜켜이 쌓인 거짓말을 장미가 털어주는 것만 같았다. 나는 종종 퇴근길에 꽃다발을 사서 바카리오의 품에 안겨주었다.
한 아름의 장미를 품에 안은 널 볼 때마다, 나는 네가 나에게 뱉은 거짓말의 수를 세었다. 언젠가 그것들이 네 목을 죄지 않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