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버전 이벤트 미카와 꿈놀이 축제와 관련된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 일본어 보이스를 기반으로 캐릭터들의 대사를 작성하였습니다. 말투, 호칭 등이 한국어 스크립트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일부 오탈자를 수정하였습니다
카즈하는 방랑자를 처음 만났던 순간을 선명하게 기억했다.
무희의 춤이 끝나자 우레 같은 박수가 쏟아지고 환호성이 터지던 바자르의 공기는 뜨거웠다.
공연의 끝을 알리는 인사를 하던 무희의 시선이 무대 아래를 향했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시선을 쫓아 고개를 돌렸더랬다.
무대를 꾸미기 위해 뿌려졌던 흩날리는 꽃잎과 반짝이는 물방울, 그 사이에서 인파와 동떨어진 채 서 있는 두 사람이 그 시선의 끝에 있었다.
그중에서도 삿갓을 닮은 큰 모자를 쓰고 있는 쪽이 카즈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눈에 띄는 큰 모자 아래로 보이는 익숙한 이나즈마 양식의 옷차림, 흔들리는 소맷자락과 수많은 소리 사이에서도 뚜렷한 방울 소리…….
무희와 시선을 맞추고 손을 마주 흔들어주고 있던 흰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그에게 훈계하듯 허리에 손을 착 올리고서 말을 걸었다. 소녀의 말을 듣던 그가 몇 마디 대꾸하는 듯했으나 결국에는 모자의 끄트머리를 왼손으로 잡고 고개를 들어 올려 무희에게 시선을 주고는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모자의 그늘에 가려졌던 무심한 표정의 옆얼굴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윤기 흐르는 검푸른 머리카락 사이로 붉게 칠한 눈매가 화려하게 느껴질 법도 하건만, 소년의 매끈한 흰 피부와 지나치게 단연한 이목구비가 빚어낸 비인간적인 분위기에는 그저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신이 조각한 예술작품 같지 않은가. 저렇게 아름다운 존재를, 카즈하는 언젠가 본 적 있는 듯한 기시감에 고개를 기울였다. 어디에서 보았지? 잊을 수 있을 리 없는 외모임에도 곧바로 짚이는 바가 없었다. 열심히 머릿속을 뒤적이는 동안 그 소년은 그대로 몸을 돌려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 움직임을 자연이 눈이 좇았다.
이쪽을 향한 소년의 가슴께에서 흔들리는 신의 눈을 보았다.
아.
어전 시합에서 신의 일검을 받고 죽었던 친구를 내려다보던 위대하신 나루카미 쇼군의 뇌기(雷氣)가 번쩍이던 자색의 눈동자를, 그 시선을 피해 빛을 잃은 신의 눈을 품에 안고 달리던 때를, 심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 불타는 듯이 뜨겁던, 숨이 턱 아래까지 차도 발걸음을 멈출 수 없던 그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먼 타향에서 만난 이 소년은 놀라우리만치 라이덴 쇼군을 닮아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름다운 소년과 눈이 마주친 그 순간 그런 것은 모두 아무래도 좋아졌다.
카즈하의 얼굴을 보고 멈칫한 그는 그대로 멈춘 채 자신이 본 것을 다시 확인하려는 듯 눈을 두어 번 깜빡였는데. 경악(驚愕)과 반색과……, 깊어진 눈동자에 담긴 이유 모를 애수(哀愁). 그 짧은 순간에 수많은 감정이 스치는 낯이 무엇보다 인간적이었던 탓이다.
「니와?」
작게 중얼거린 그의 목소리가 딸랑, 하는 방울 소리와 함께 선명하게 들렸다.
제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바람이 귓가에 속살거리는 듯했다.
주바이르 극장의 무희의 춤이 매우 아름다워서 기회가 된다면 다시 보고 싶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던 북두로부터 공연 표를 두 장 선물 받았다.
“모레 밤 공연이라더라.”
북두는 그리 말하며 카즈하에게 이른 자유 시간을 주었다. 항구에 짐을 내리는 것은 아직 관련 절차가 남아 있어 내일부터나 가능한 터라 다른 선원들도 곧 각자 흩어져 휴식을 즐기러 갈 예정이라는 말을 덧붙여주었다.
“무얼. 정인 만나러 갈 거지?”
“당연하지 않소. 소생에게 신경 써주어서 정말 고맙소, 누님.”
카즈하는 품에 표를 소중히 갈무리하고는 북두에게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북두는 어서 가라고 훠이훠이 손을 내저었다. 카즈하는 웃는 낯으로 다시 한 번 고맙다 인사하고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사실 당장이라도 정인을 만나러 뛰쳐나가고 싶었던 참이었으니까.
오르모스 항구에서 수메르성까지 가는 길에는 높은 언덕이 많아 바람 원소의 도움을 받아가며 훌쩍훌쩍 뛰어넘어 서둘렀다.
이제 막 정오를 지난 시각이니 방랑자는 아카데미아의 도서관에 있거나 푸스파 커피숍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수메르성 입구를 지나 빙 도는 언덕길을 오르는 걸음을 재촉했다. 람바드 술집에서 풍기는 향신료 향기를 스쳐 가며 방랑자가 점심은 먹었을지에 대해 생각했다. 먹지 않았다고 하면 같이 간단하게 뭐라도 먹자고 그의 손을 잡아끌고 나와야지.
잰걸음으로 커피숍 앞에 도착한 카즈하는 곧바로 방랑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외부 테이블에 앉아 종이 뭉치를 읽는 중이었다. 테이블에는 진작에 비워진 커피잔이 구석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 자리에 한참을 앉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카즈하는 후다닥 달려가며 그를 불렀다.
“방랑자 공!”
“아, 카즈하. 어서 와.”
그가 종이 뭉치를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몹시 언짢던 표정이 사르르 풀리며 고운 얼굴에 예쁜 미소가 단숨에 피었다.
“보고 싶었소. 잘 지냈소?”
“나야 아카데미아에서 멍청한 논문들을 지적하며 지냈지. 너야말로 별일 없었지? 모험가 길드를 통해서 받는 편지는 언제나 ‘전략. 잘 지내고 계시오? 지금은 □□에 도착했소. 그리움에 사무쳐 붓을 드오.’라고 시작해서 풍경이 아름답고 먹을 것이 맛있었다는 얘기만 하다가 ‘나는 잘 지내고 있소. □□을 보니 방랑자 공이 너무나 보고 싶구려. 다시 만나는 날을 고대하고 있겠소.’라고 끝나잖아. 그 편지를 읽고서 내가 알 수 있는 건 네가 어딜 갔다는 것뿐이라고. 어디 다친 곳은 없는 게 맞지?”
방랑자는 카즈하의 몸을 꼼꼼하게 살펴봤다. 카즈하는 두 손을 들고 방랑자가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확인은 금방 끝났다. 애초에 바뀐 것이라고는 손에 감은 붕대를 어제 새것으로 갈았던 정도다.
“정말 평탄한 항해라서 사건도 없었다오. 날씨도 무척이나 좋았소. 방랑자 공은 조금 피곤해 보이는구려.”
“너도 그 멍청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오던 잠도 달아날걸.”
한숨 쉬듯 말한 그는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종이 뭉치를 아예 종이봉투에 정리해 넣으며 자리를 정리했다. 빈 찻잔을 점원에게 넘겨주고 카즈하와 방랑자는 커피숍을 나섰다.
“어디로 가겠소?”
“일단 사람들이 없을 곳으로 가서 이야기하자. 따라와.”
커피숍에 들어가던 아카데미아의 제복을 입은 청년 둘이 카즈하에게 웃으며 다정하게 말을 붙이는 모습을 보고 입을 떡 벌리며 놀라는 것을 목격했고, 주변의 사람들이 ‘세상에, 그 모자가 다른 사람에게 다정하게 굴고 있어…….’ 같은 말을 속닥거리는 것도 예민한 귀가 잡아내고 있던 터라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큰 길가를 벗어나 일부러 큰 뿌리 뒤편의 그늘에 들어가고서야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적당히 자리 잡고 앉아 숨을 돌리다가 문득 품에 넣어두었던 표가 생각났다.
카즈하는 제 옆에 앉은 방랑자의 오른손을 꼬옥 잡으며 그의 일정을 물었다.
“모레 저녁에는 시간이 되오? 주바이르 극장의 공연 표가 생겨서 같이 가고 싶소.”
“그 공연 표, 구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무리한 거 아니야?”
“북두 누님을 통해서 운 좋게 구했다오.”
“그래? 그 날 시간 비워둘게.”
“선뜻 수락해주니 정말 기쁘구려. 그러면 람바드 술집 앞 광장에서 공연 시작보다 한 시간 정도 여유를 두고 만나면 되겠소?”
“알았어. 그러고 보니 오늘 점심은 먹었어? 넌 아직 안 먹었을 테지?”
“아, 맞긴 하오만, 어떻게 알았소?”
“네 성격에 항구에서 곧장 여기로 달려왔을 테니까.”
“하핫. 그렇지만 오랜만에 당신을 만날 수 있게 되었는데 어떻게 서두르지 않을 수 있겠소.”
기껏 그렇게 말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꼬르륵 울리는 배 때문에 카즈하는 멋쩍게 뒤통수만 긁적였다. 쑥스러워하는 카즈하가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피했으나,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귀 끝까지 벌겋게 물들어 있는 것을 보고 방랑자는 파안일소(破顔一笑)했다.
즐겁게 웃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에 붙은 풀을 가볍게 털어냈다.
“술집으로 가자. 뭐라도 먹으면서 얘기하는 게 낫겠어.”
“술도 시켜도 되오?”
카즈하가 술집이란 단어에 먼저 반응하자, 방랑자는 어처구니없어하며 쳐다보았다.
“오래간만에 만나서 데이트하는 건데, 분위기 없게 술에 취해서 잘 셈이야?”
“……미안하오. 그래도 조금은 술을 마실 수 있게 되었소만.”
“너한테 술은 아직 100년은 일러.”
“소생이 죽을 때까지 마시지 말라는 뜻과 무엇이 다르오?”
“어떻게 알았지? 그 뜻이 맞아.”
“너무하구려…….”
부러 시무룩하게 대답하니, 방랑자는 키득키득 웃으면서도 카즈하의 손목을 잡아 일으켜 세우며 재촉했다.
“술은 안 되지만 맛있는 건 사줄게. 배고프잖아.”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서 서로의 일정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모레 오전까지는 일이 있다는 거구나. 그러면 식사를 제대로 챙기고 만나기 어렵겠네. ……도시락이라도 만들어 줄까?”
“정말이오?”
방랑자가 그렇게 말을 꺼내자, 카즈하는 서둘러 반응했다. 방랑자의 요리는 정갈한 데다 담백한 맛으로 언제나 카즈하를 만족시키는 일품이었다. 오랜만에 그것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군침이 도는 것 같았다. 방랑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확정을 지어주었다.
“그래.”
“무엇이든 만들어 준다면 정말 흐뭇할 것이오. 방랑자 공의 요리를 먹을 수 있다니 소생은 벌써부터 너무나 기대된다오.”
“최선을 다해볼게.”
“정말 기쁘구려!”
방랑자는 싱글벙글 웃는 카즈하를 한껏 귀여워하는 표정으로 지켜보다가, 또다시 모이기 시작한 시선에 한숨을 쉬며 일어났다. 그리고는 후식으로 먹을 간식거리와 차 두 잔을 더 주문하여 밖으로 가지고 갈 수 있게 포장해왔다.
그것을 챙겨 들고 둘은 나무 위로 향하는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아카데미아를 스쳐 지나가고서도 더 올라가 정선궁의 입구마저 지나서 길조차 없는 큰 가지 위를 망설임 없이 나아갔다. 바람 원소를 다룰 수 있는 두 사람은 막힘 없이 쭉쭉 높은 가지로 올라가 시야가 탁 트인 풍경을 보며 가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들고 온 간식거리를 무릎 위에 늘어놓고 차를 마시며 두런두런 여러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카즈하는 그러고 보니 돌아오는 도중에 신기한 경험을 했다며 물꼬를 텄다.
“이나즈마로 향하는 길이었소. 바다가 잔잔하고 바람도 적당하게 불고 있어서 소생은 한가로이 낚싯대나 드리우고 시상(詩想)을 고민하고 있었다오. 그런데 갑자기 낚싯대가 맹렬하게 움직이지 않겠소? 한참 힘겨루기를 하고 있으려니, 주위의 다른 선원들까지 달라붙어 도와주었지. 셋이나 붙어 겨우 낚아 올렸는데, 바다에서 낚싯줄을 따라 튀어 오른 게 상어였지 뭐요. 게다가 공중에서 얼마나 힘차게 몸을 뒤틀었는지 결국 낚싯대가 뚝, 하고 부러져버렸소. 상어는 그대로 바다로 풍덩! 떨어졌지. 크기가 제법 컸소. 녀석이 바다에 떨어질 때 그 높은 갑판까지 물이 튀었소. 낚싯대가 부러지기 전에 녀석을 잠깐이나마 볼 수 있을 정도로 바다 밖으로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오.”
방랑자는 카즈하의 그런 이야기를 즐거이 듣기만 했다. 카즈하는 그런 그에게 있었던 일도 듣고 싶다며 졸랐다. 방랑자는 카즈하에게 본래도 무르게 대했지만, 카즈하가 어린아이 마냥 굴기라도 하면 흐물흐물 녹아서 무슨 말이든 들어주고 싶어 했다. 그렇게 챙겨주고 나면 부끄러워하면서도 그의 기분이 풀린 듯이 보여서, 카즈하는 종종 방랑자에게 일부러 칭얼대곤 했다.
오늘도 그렇다. 단숨에 그의 기분이 한껏 느긋해진 것이 느껴졌다.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카즈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주었다.
“인론파에 소속된 녀석들이 논문을 봐달라고 졸라서 체크는 하고 있지만, 개탄스러워서 한소리 안 할 수가 없었지. 애초에 이나즈마 관련된 자료에 오류가 너무 많아. 그런 걸 보고 연구하니 논문이랍시고 내놓은 것들도 엉망이야. 연구자라는 놈들이 자료의 오류 여부도 확인하지 않고 사용하는 게 말이 돼? 마음 같아선 죄다 찢어버리고 싶었어, 그딴 쓰레기들,”
“쉬이. 그런 말은 하지 마시오. 예쁜 입에서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다오. 물론 방랑자 공이 고생했다는 것은 가슴으로 느끼고 있으니. 이번에 이나즈마에 들렀을 때 미카와 축제를 하고 있었소. 소생도 마침 날짜가 맞아 마지막 날 구경을 갔소. 분위기가 떠들썩하여 참으로 보기 좋더구려. 간만에 지인들의 얼굴도 볼 수 있어 즐거웠다오. 그런데 이나즈마를 떠나기 전에 야시로 봉행 쪽에서 소생에게 전한 말이 있었소. 수메르의 아카데미아에서 실전된 단조 설계도를 복원했다며 미카와 축제 축하 선물로 보내왔다고 하더이다.”
“…….”
“노력해줘서 고맙소.”
“……애초에 내가 실전시킨 기술이야. 고맙단 말을 들을 자격도 없어.”
“그렇다고 한들 방랑자 공의 노력이 가벼운 것이 되는 것도 아니라오. 무척이나 심혈을 기울여 찾아보고 정리하여 보내주었겠지. 자신의 책임을 경솔히 여길 이가 아니라는 것을, 소생은 잘 알고 있소.”
“…….”
“언젠가 소생도 그 설계도대로 검을 만들어 볼 터이니, 기다려줄 수 있겠소?”
“……그래.”
공연 당일이 되었다.
방랑자와 만날 시간이 기대되어 참을 수가 없어, 서둘러 일을 마무리하고 수메르성으로 향했다. 정인에게로 걸음걸음 마음이 한껏 들떴다.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방랑자의 모습을 보았으나 말을 걸지 못했다. 그곳에는 풀의 신이 함께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 주위를 일부러 피해간 탓에 두 사람은 유별나게 눈에 띄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거리가 멀어 들리지 않았지만, 지나가는 이들이 두 사람을 힐끔거리며 속닥이는 소리는 귀에 닿았다. 저 소년이 작은 쿠사나리 화신 님의 권속이라며? 아카데미아에서 연구도 맡겼다던데. 두 분이 자주 같이 다니시던데 사이가 참 좋으신 것 같아 보기 좋다, 그치?
수메르 사람들이 두 사람을 보는 눈빛이 따사로웠다.
방랑자가 풀의 신과 협력관계에 있는 것은 알고 있다. 방랑자가 직접 카즈하에게 그녀와 엮여 수메르에서 자신이 어떤 일을 했었기에 이렇게 엮이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주기까지 했다.
카즈하에게 거짓을 말하지도 않으며, 배신하지도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머리로는 이해했다.
하지만 가슴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린 아이인 척 굴었다고 하여 실제로 아이가 된 것도 아닐진대, 이렇게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것인지…….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는지 풀의 신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홀로 남은 방랑자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금세 카즈하를 발견하고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방랑자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오늘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별일 아니야.”
“안다오…….”
“…학파 내 건의사항을 전달한 것뿐이야. 말했다시피 자료의 검수는 내 손을 통과해야겠지만, 오류가 많아도 너무 많아서 그 부분에 대해 정리를 안 할 수는 없어.”
영 마뜩잖은 듯한 표정의 카즈하의 대답에 방랑자는 길게 첨언 하였으나 여전히 카즈하의 태도는 미지근했다. 방랑자는 야자다하 연못이 내려다보이는 벤치 위에 놓인 찬합을 가리키며 카즈하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도시락부터 얼른 먹자. 공연 시작하기 전에 먹어야지.”
방랑자의 손에 끌려가며 카즈하는 가슴에 품고 있던 투기를 곧장 뒤로 던져버렸다. 그래, 정인이 해준 도시락을 먹는 것이 더 중한 것이다. 말랑한 머리는 언제나 저에게 유리한 것은 빠르게 도입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공연을 볼 때 말인데……. 손을 잡고 무대를 봐도 되오?”
방랑자는 한 박자 대답을 미루다가, 결국에는 한숨 쉬듯 대답해주었다.
“……마음대로 해.”
바자르의 무대 앞에서 처음 만났던 그는 참으로 아름다웠더랬다. 처음 보는 남인데도 그러했는데. 이번에는 그 반짝이던 이와 정인이 되어 보러 가는 것이다.
얼핏 보인 방랑자의 귀 끝이 발그레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공연이 무척이나 기대되어 설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