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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인지 발행 정보 ▶두 사람의 호흡방식
하늘은 맑은 뒤 흐림
오이카와는 결코 눈물이 많은 애가 아니었다.
눈물을 흘릴 시간에 차라리 더 연습을 하겠다고 공을 들고 체육관으로 뛰어가는 그런 성격이었다. 그렇다고 강철 같은 사람이냐면 그것도 아니다. 오이카와가 자신의 감정에 무너지는 것은 그가 혼자가 되었을 때다. 주장으로서, 그리고 선수로서의 책임감에서 벗어나면 그는 약해졌다.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할 곳에서 혼자 울었다. 부실 문단속을 자처하고 남아서 울기도 하고, 화장실에서 칸 하나를 점거하고서 이를 악 물고 소리를 죽여 울기도 하고, 집에 돌아가 제 방에서 울기도 하고.
그것을 티내지 못하는 것은 그가 오이카와 토오루이기 때문이다.
키타가와제일 중학교 남자 배구부의 오이카와 토오루.
아오바죠사이 고등학교 남자 배구부의 오이카와 토오루.
그는 유명인사였다. 미야기현에서 배구를 하는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오이카와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더 적을 터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강력한 서브에 3~4점을 빼앗기는 것은 그를 상대하는 팀에게는 패배의 신호와도 같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흐름을 빼앗기는 것만으로도 시합에 끼치는 영향은 지대한데, 오이카와는 서비스 에이스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선수로서도 어지간한 에이스들에게 뒤처지지 않는 기량을 갖고 있고, 세터로서 경기를 운영할 때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적절한 전략을 통해 승리를 쟁취하고야 마는 영리함도 있었다. 현내에서 종합력을 따지면 첫 손가락에 꼽히는 선수는 오이카와였다.
그 뒤에 따라 붙는 불명예스러운 수식어들이 몇 개 있긴 해도, 전국구급 선수지만 우시와카가 같은 현에 있어 재수가 없다고 수군거리는 목소리들조차도 오이카와 토오루라는 선수의 실력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았을 정도니까.
거기에 타고난 외모며 사람을 좋아하고 대체로 상냥하게 말을 받아주는 특유의 성격으로 같은 학교 여학생들은 물론이고 다른 학교의 여학생들도 휘어잡아, 그녀들이 팬이라며 오이카와를 응원해주러 와준다. 학교에서 연습 경기라도 잡히면 여학생들이 술렁이는 것은 익숙한 모습이었고, 공식 경기 때 이쪽의 응원석에서 여자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오이카와와 함께 있는 한 이상할 것 하나 없는 광경이었으므로, 상대교의 선수들은 이것 역시 부러워했다.
오이카와는 무수히 많은 것들을 손에 쥔 천재로서 두려움과 질투와 선망의 눈길을 받으며 코트의 중심에 서서 팀을 승리로 이끈다.
그런 오이카와도 그저 평범한 고등학생일 뿐이었다.언제나 앞만 보고 달려 나가는 것 같아도 그는 선택의 기로 앞에서 망설이고 머뭇거리고, 힘들면 멈춰서거나 주저앉기도 했다. 단지 그것을 남들에게 보여줄 만큼 자기 관리에 허술한 녀석이 아니었던 것뿐이다. 보여주는 것들의 범위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넓을 뿐,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에게도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려고 하지는 않았다. 다른 것들을 떠나 자존심의 문제다. 오이카와는 어릴 적부터 그런 애였다. 지기 싫어하고, 약한 모습을 안 보여주고 싶어서 어딘가에 숨고, 한참을 씩씩 거리다가 마음이 정리되면 제 발로 돌아왔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어디에 숨어서 무얼 하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해왔다. 숨기고 싶어 하는 일이니 굳이 아는 척할 이유도 없고, 금방 다시 일어나 제 마음을 정리하고 이와이즈미를 부르며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이 오이카와를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 없으나, 이 방식을 고수할 수 없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건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의 일이다.
이와이즈미도 오이카와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땐 이미 배구에 열중하고 있었으므로 배구명문으로 유명한 키타가와제일 중학교를 목표로 했다. 입학식이 끝나자마자 곧장 배구부에 달려가 가입신청서를 냈다.
초등학교과 중학교는 확실히 달랐다. 고작 1년, 2년 선배일 뿐인데 몸의 크기도 형태도 차이가 났다. 그것이 오이카와에게 큰 자극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오이카와는 연습에 더욱 몰두했다. 키와 덩치, 기술, 경험. 그 모든 것들이 오이카와에게는 부족했고, 자신의 모자란 점을 그대로 방치할 성격도 아니라 분주하게 그 자리를 연습으로 메우려 들었다. 자신이 가야할 방향을 선배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잡은 오이카와는 멈추지 않고 하루하루 전진했다.
배구부 1학년 중에서 오이카와는 여러 가지 의미로 단연코 가장 눈에 띄었다. 남들보다 뛰어난 체격에 남들보다 뛰어난 센스, 그리고 그것을 살린 발굴의 실력 향상. 그것이 화근이었다. 1학년 주제에 2학년, 3학년 선배들을 제치고 보결 멤버로 레귤러 자리를 꿰찬 것이 특히 불만을 샀다. 말이 레귤러지 사실상 시합에서 뛰는 일은 거의 없는데다 다음 시합에서는 얼마든지 빠질 수 있는 말단의 말단인 자리였지만, 그 자리를 차지할 기회를 이제 막 입학한 새파란 1학년 꼬마에게 빼앗겼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면 문제였다.
오이카와는 이 감독의 판단에 복잡한 심경이었다. 실력만 된다면 얼마든지 레귤러에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던 말이 사실임을 확인했고, 그런 그에게 시합에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평가를 받은 것은 나쁜 일이 아니었으나, 그것과는 별개로 아무리 연습시합이었다지만 타교를 상대로 하는 시합에 1학년을 정말로 레귤러로 넣어버리는 냉정하지만 과격한 판단이 결코 오이카와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을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이카와는 선배들의 은근한 괴롭힘의 표적이 되었다. 감독이나 코치는 눈치 채지 못할 정도의 소소한 것들이었다. 당하는 본인에게는 전혀 소소하지 않은 것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그들의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해도 선배를 대하는 깍듯한 태도를 지키고 있지만, 스트레스는 그의 안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이와이즈미에게 돌아오는 시비도 사람 속을 긁어놨는데, 그 시비의 중심에 있는 오이카와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 아닌가.
오이카와가 자율연습을 한다고 늦게까지 남는 것을 알고서 일부러 그들도 더 늦게까지 남아있기 시작했다. 감독과 코치에게는 열심히 연습하겠다고 남는 모습으로 겸사겸사 점수를 얻고, 후배인 오이카와의 앞에선 선배라는 명목으로 온갖 심부름을 시켜댔다. 물론 감독과 코치가 없는 틈을 타서 거들먹거리며 시키고, 저들이 자리를 지킬 땐 좋은 선배의 얼굴을 하고 공을 만지는 약삭빠른 족속들이었다. 연습을 좀 하려하면 흐름을 끊어대니 오이카와도 영 집중하지를 못했다. 저치들에게 트집을 잡히는 건 또 싫어서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웃는 낯으로 선배들이 시키는 일을 예예하고 해냈다.
그래도 꾸준히 자율연습을 하겠다고 남는 오이카와에게 학교가 아니라 차라리 초등학교 때 다녔던 배구 클럽 선생님께 부탁해 그쪽 체육관을 쓰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오이카와는 자율연습마저 선배들의 눈치를 보기 싫다며 결국 초등학교 때 다녔던 배구교실 선생님께 부탁하고 저녁 시간에 운영되는 사회인 배구회의 회장님께도 양해를 구해 체육관의 사용 허가를 얻어냈다. 어린이 배구교실이 끝난 후, 사회인 배구회 모임 시간까지 체육관을 독점할 수 있었다. 배구회 멤버들과는 함께 어울려 연습하기도 했다. 종종 배구회가 쉬는 날에는 오이카와가 온 체육관을 차지하고 사람들을 공으로 때릴 염려가 없이 서브를 쏴댔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연습하는 것을 지켜보고 너무 무리하기 전에 제동을 걸어 샤워장으로 밀어 넣는 역할을 스스로 맡았다. 그것도 없으면 멈추지 않고 무작정 목표를 향해 돌진하다 과부하로 어딘가를 크게 다쳐 올 것만 같아 걱정됐기 때문이다.
오이카와는 특히 서브 연습에 노력을 기울였다. 토스도 스파이크도 연습량이 적은 것은 아니었으나, 오이카와의 요즘 관심사는 점프 서브였다. 본래도 점프 서브가 멋있다며 꾸준히 연습해왔지만 최근의 집중력은 남달랐다. 중학교에 올라가 성장기를 맞아 쑥쑥 자라는 키와 그 몸에 조금씩 붙어가는 근육은 고스란히 서브에 실린 힘이 되었다. 서브를 반복하며 서브의 컨트롤을 손끝에 익힌다. 이제는 단순히 세게 내려치는 것뿐 아니라 유효한 범위 안으로 넣기 위한 섬세한 조정의 단계였다.
오이카와는 연습에 매진하는 한편, 선배들의 행동에 드물게 화를 참지 못하고 짜증을 내는 이와이즈미에게 “이제 곧 졸업해서 떠나버릴 3학년들은 상대할 가치가 없고, 우리들이 2학년이 되면 실력 없는 구 3학년은 실력으로 불만을 누르고 정당하게 주전이 되면 그만.” 하고 딱 잘라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다시 서브 연습을 하는 오이카와는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키타이치제일의 감독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실력지상주의자였으니 오이카와의 실력은 분명 인정받고 주전 선수 명단에 그의 이름을 올려줄 것이다. 다만 감독과 코치의 판단이 너무나 기계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저들이 보는 학생들은 그저 실력뿐인 것이 아닐까? 그걸로 정말 괜찮은 걸까?
이와이즈미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이카와가 풀쩍 뛰어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위력을 올리고서 도통 득점할 수 있는 흰 선 안으로 들어가질 못하고 장외홈런을 반복하던 새로운 서브도 서서히 흰 선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오이카와, 나이스 서브!”
네트 너머에서 내려친 공이 건너편 바닥을 강타했다. 위치 판정을 위해 건너편에 서있던 이와이즈미가 성공했음을 알려주었다. 아슬아슬하지만 코트 안이었다. 벌써 스무 번은 족히 쏴댔으니 좀 쉬게 해야겠다고 생각해 포카리가 든 병을 들고 오이카와에게 다가갔다. 성공했으니 등을 두드려 축하해줬더니, 오이카와는 물통을 건네받고선 자기는 아직도 멀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현재 서브의 성공률은 열 번에 한 번도 성공하기 힘들어 쓸모가 없다고, 적어도 열 번에 세 번은 성공시킬 정도의 확률은 되어야 시합에서 써먹지 않겠냐며 오이카와는 혀를 찼다. 아직 연습 부족이라는 말이다. 분명 조금 더 연습을 하겠다고 나설 기세라서 이와이즈미가 선수를 쳤다.
“그러다 무릎 부숴먹으면 무슨 소용이냐? 오늘은 점프 서브 연습 금지.”
“앗, 왜!”
오이카와는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반발했다. 하지만 이쪽에는 그걸 막을 명분이 충분하다.
“너 요즘 무릎 아프다며? 그런 놈이 폴짝폴짝 뛰어다녀서 좋을 게 있겠냐?”
“…엄마가 말했구나?”
오이카와는 정보가 새어나간 경로를 추측했다.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래도 실제로 아프긴 아픈 모양인지 안 아프단 소리는 안 한다.
“그냥 성장통이야. 키가 자라느라 몸이 비명을 지르는 것뿐이라구. 다친 거 아냐.”
“몸이 비명을 지를 땐 좀 쉬어주기도 하고 그래라. 자라는 데 집중하게.”
“그치만 좀만 더 하면 그 딱 들어가는 느낌말이야, 그걸 알 것 같았는데…….”
오이카와가 못내 아쉬워 공을 들고 이와이즈미를 쳐다보았다. 빤히 꽂히는 시선에도 이와이즈미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잘 아는 그였다. 묵묵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포기를 선언하고 그의 시선이 떨어질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면 된다.
“너무 조급해 하지 마라. 우린 아직 1학년이야.”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건데!”
“그러다가 다치고 후회한다. 넌 네 배구 인생을 좀 더 장기적으로 봐야 돼.”
한두 해만 배구할 것도 아닌 녀석이 제 몸을 아끼기보다 당장의 연습에 목을 매는 게 답답했다. 이와이즈미가 보기에 오이카와의 연습에 대한 태도며 배구에 대한 열정은 보통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중학교까지만, 고등학교까지만, 부활동으로만, 취미로만, 그 선에서 끝날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니 좀 몸을 아껴 쓰라고 잔소리를 하니, 오이카와가 공을 바구니에 던져 넣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이와쨩한테 이런 말을 듣다니, 오이카와 씨 대충격!” 이 모양이다. 이와이즈미는 헛소리에 착실하게 반응을 돌려주었다.
“뒤진다.”
“잘못했어요! 그 주먹은 내려, 내려줘, 제발 내려주세요! 이와쨩이 때리는 거 진짜 아프단 말이야!”
오이카와가 순식간에 코트를 가로질러 도망갔다. 공을 던져도 피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한 거리다. 약은 놈. 이와이즈미는 들고 있던 공을 옆구리에 끼고, 다른 손으로 오이카와에게 손짓했다. 손가락으로 체육관에서 나가는 문을 가리킨다.
“오늘은 그만 가자. 먼저 가서 옷 갈아입고 있어.”
“이와쨩은?”
서브 연습 금지령에 흥이 식었는지 집에 가자는 말에도 순순히 수긍했다.
“뒷정리하고. 금방 간다.”
“나도 도와줄게!”
“공을 창고에 넣기만 하면 되는데 도와주긴 뭘 도와줘. 빨리 나가기나 해.”
“이와쨩 엄마가 청소한다고 날 쫓아냈어! 냉정해! 차가워!”
오이카와가 거짓 울음으로 훌쩍거리다가 “거기에 계속 서있으면 몸 식으니까 빨리 탈의실 가서 뭐라고 걸치고 있어. 감기 걸린다.” 하는 잔소리에 문을 닫고 탈의실로 발소리가 멀어졌다.
이와이즈미가 체육관을 마무르고 탈의실에 가자 오이카와는 저지의 지퍼를 목 아래까지 단단히 올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땀에 젖은 옷을 따로 담고, 그 옆에 교복을 개어 넣고, 이와이즈미도 짙은 푸른색 저지에 팔다리를 꿰었다. 가방을 안고 그 사이 꾸벅꾸벅 졸던 오이카와를 깨워 집으로 향했다.
해가 떠있는 시간이 훌쩍 줄어, 벌써 하늘이 까맣게 물들기 시작했다. 저지를 입었지만 얼굴에 닿는 바람이 찼다. 작은 구름 몇 개만 떠있는 하늘에 별들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고, 두 사람은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대비하세요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2학년이 되고, 드디어 오이카와가 주전으로 선발된 후의 일이다. 그 해 여름에는 세이죠의 성적을 대변하듯 유난히 비가 자주 내렸다.
눅눅한 공기가 무거웠다.
아직 주전으로 올라가지 못한 이와이즈미는 응원석에 앉아 오이카와를 내려다보았다. 핀치 서버로 투입되어 긴장한 얼굴로 공을 들고 자리에 서는 모습, 서브 전에 공을 만지며 심호흡하는 버릇과 그래도 풀리지 않은 긴장으로 평소보다 뻣뻣한 점프, 손바닥으로 공을 내리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바닥을 울리는 소리와 잠깐의 정적 끝에 따라오는 높은 호루라기 소리.
괴동 우시지마 와카토시라는 존재를 처음으로 겪고, 아무리 서비스 에이스로 점수를 얻어도 단 한 사람의 스파이크에 팀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결국에는 졌다. 오이카와의 서브가 모두 성공한 것도 아니라 그의 실수 탓에 내준 점수도 분명 존재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서브 미스가 많기는 하지만, 그 이상으로 점수를 얻어 사기를 북돋은 것도 오이카와였다. 패배의 원인을 오이카와에게 돌릴 만큼 양심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본인만은 그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겠지.
이와이즈미가 봐온 오이카와는 그런 사람이었다. 물론 그렇게 오래 잠겨있지는 않을 것이다. 패배에 대한 분함과 자책마저 씹어 삼키고 일어서서 등을 곧게 세우고 위를 바라보며 걸어 올라갈 터였다. 하지만 지금 바닥만을 바라보며 고개를 들지 못하는 오이카와를 보고 있노라니 그런 예상은 하등 쓸모가 없다. 우시와카에게 우는 모습 따위 보여주지 않겠다는 자존심은 있어 눈물만은 간신히 참았지만, 그의 안에서 격렬하게 소용돌이 치고 있을 감정만은 응원석에 있는 이와이즈미에게도 충분히 전해졌다.
그런 오이카와에게 응원석에서 그를 응원했던 사람이 해줄 수 있는 일은 고작해야 응원석을 보며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것을 받아주고, 수고했다며 박수를 쳐주는 일 정도였다. 그게 분했다.
시합이 끝나고 체육관을 나서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기예보에도 비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그러니 우산 따위를 챙겨온 학생들이 있을 리가 있나. 평소에 가방 구석에 박아둔 채 잊고 있었던 작은 접이식 우산을 발굴한 이와이즈미나 그처럼 우산을 항상 챙겨 다니던 두엇 말고는 모두 비를 맞으며 돌아가야 할 상황이었다. 단순한 소나기로 금방 그칠 거라 판단한 감독과 코치의 지휘 하에 세 개의 우산으로 선수들이 학교 버스로 이동했다.
학교로 돌아가는 중, 혹은 미팅을 하고 나올 때쯤이면 괜찮을 거라는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빗발은 약해지기는커녕 거세지기만 했다. 감독은 미팅을 간단하게 끝내고, 각자 집에 연락해서 우산을 부탁할 것을 권했다. 안 그래도 버스 안에서 부모님의 걱정 섞인 연락을 받은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가족들의 도움으로 귀가를 할 무리가 금방 추려졌다. 가족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은 수위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학교 안을 싹싹 뒤져서 나온 후줄근한 낡은 우산들을 받았다. 개수가 모자라 하굣길 방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우산을 같이 쓰는 방법으로 하교했다.
오이카와는 낡은 우산을 나누어 쓰는 데 끼지 않고,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의 부모님은 맞벌이에 퇴근 시간도 늦은 편이라 데리러 오기 힘들다는 것을 아는 이와이즈미에게 우산이 있었으니까.
“넌 나랑 쓰고 가자.”
“이와쨩, 그거 너무 작잖아. 우리 둘이 같이 쓰면 머리만 겨우 가려지겠네.”
이와이즈미의 군청색 우산은 빈말로도 크다고 할 수 없는 휴대성 중심의 작은 접이식 우산이다. 이와이즈미가 혼자 써야 겨우 비를 피할 만한 크기라는 건 두 사람 모두 잘 알았다.
“그럼 맨몸에 홀딱 비 맞고 집에 가다가 감기 걸릴래?”
하지만 이와이즈미의 고집을 꺾기 힘들다는 것도 오이카와는 잘 안다. 고민하던 오이카와는 차선책을 떠올렸다.
“그럼, 중간에 편의점까지만 같이 쓰고 가. 비닐우산이라도 하나 사게.”
이와이즈미는 결국 그 의견에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수긍했다. 합의가 이루어지고 두 사람은 저지를 입고 교복을 가방 안에 잘 챙겨 넣었다. 여름이라 옷의 부피가 작아 다행이었다. 옷이 든 가방을 품에 안고 두 사람도 하굣길에 올랐다.
어깨에 우산을 때리고 굴러 떨어진 빗줄기가 흘러내렸다. 방수가 되는 재질이 아니라 우산 바깥쪽으로 삐져나간 팔과 몸통 부분이 금방 젖었다. 가방과 머리만 겨우 우산 밑에 구겨 넣은 둘은 서둘러 편의점으로 뛰어 들어갔다.
우산을 접고 한숨 돌리니 그제야 자신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둘 다 몸의 반이 젖어 우산을 썼다는 말을 꺼내기가 무색한 꼴이었다. 오이카와가 투명한 비닐우산을 골라 계산하는 동안 두 사람은 그게 웃기다고 키득거렸다. 웃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처럼 웃으며 편의점을 나왔다. 끊임없이 조잘대는 오이카와의 이야기에서 시합에 대한 화제는 없었다.
이와이즈미는 그 이야기를 하던 오이카와의 표정을 기억하지 못한다. 우산은 투명하고, 바로 옆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던 오이카와인데도, 그 때 했던 이야기는 선명하게 기억나는데도, 그 때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보이지 않았다. 오이카와가 쓴 우산 위로 방울방울 튄 물방울이 모자이크 같다고 생각했다.
이와이즈미의 집 앞에서 헤어졌다. 오이카와의 집은 이와이즈미의 집을 지나 한 골목을 더 걸어가야 나왔다. 내일 보자는 인사를 할 땐 눈을 안 마주칠 수가 없어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평범하게, 집에서 펑펑 울겠구나 싶은 울음을 꾹 참은 얼굴이었다.
비는 새벽까지 쉬지 않고 쏟아졌다.
다음날 아침, 등굣길에 본 오이카와의 눈가는 빨갛게 짓물러있었다.
또다.
시라토리자와와 만났다. 결승이었다. 기합을 단단히 넣고 코트에 섰다.
다음에는 꼭 우리가 전국에. 복수의 칼날을 갈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서브, 토스, 블로킹, 리시브, 무엇 하나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가히 자신할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 게다가 2학기가 되고, 3학년들이 고등하교 진학을 준비하며 부에서 은퇴했기 때문에 팀의 중심이 2학년에게 자연스럽게 넘어왔다. 새로운 팀의 주장은 오이카와였다. 감독과 코치의 판단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주장의 자리를 넘겨받기도 전에 오이카와는 이미 2학년들을 제 사람으로 끌어 들인지 오래였다.
1학년일 적부터 연습을 할 때는 호흡을 맞춰왔고,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하나의 팀으로서 섬세하게 조율하며 손발을 맞춰왔다. 결코 나쁘지 않은 팀이었다. 실력이 없단 소리를 들을 팀은 아니었는데도 결과는 한 세트도 따지 못한 완패였다.
미팅이 끝나고 자율연습을 하겠다고 체육관에 남았지만, 이런 날에 연습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왜 한 세트도 못 얻는 거야!”
오이카와는 드물게 인상을 팍팍 구겨가며 성질을 냈다. 상대는 애꿎은 바닥과 배구공이었다. 풀쩍 뛰어 올라 공을 내리쳤다. 서브 같은 그럴듯한 게 아니라 단순히 있는 힘껏 공을 때리는 행동이었다. 당연히 조준을 했을 리가 없어 공은 네트 건너편의 아무 곳에나 떨어졌다.
“망할 우시와카!” 공이 굉음을 내며 바닥과 충돌하고도 기세가 죽지 않아 벽에도 돌진했다. “짜증나게!” 공이 맹렬하게 제 몸을 바닥에 들이박았다가 저 멀리로 탕탕탕 소리를 내며 튀었다. “블로킹은 다 뚫고!” 이제 슬슬 오이카와의 손바닥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저런 식으로 무식하게 때려대니 본인에게도 대미지가 돌아올 터였다.
“어떻게 세 명이 달라붙어서 블로킹했는데 그걸 정면에서 때려 부수지?”
화풀이도 나쁘지 않지만 그걸로 몸이 상하면 무슨 소용이냐. 이와이즈미는 배구공을 꺼내려는 오이카와에게서 공 바구니를 빼앗았다.
“뭐야, 이와쨩! 날 막지 마!”
“손바닥 안 아프냐?”
“손바닥보다 내 가슴이 더 아프거든?”
가슴 위의 티를 움켜쥐며 자신의 가슴이 아프다고 어필하는 걸 보고 있으니 할 말이 없다. 여기에 대고 대뜸 “울어.” 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이와이즈미는 뒤통수를 세 번 긁고 화제를 돌렸다.
“배는 안 고프냐?”
오이카와는 그제야 시계를 봤다. 경기를 하고 돌아와, 자율연습이란 명목으로 실컷 몸을 움직이기까지 했으니 몸은 땀범벅에 뱃속이 텅 비었다며 비명을 지르고 있을 시간이었다.
“배고파! 이렇게 가슴이 아픈데 배는 고프다니, 정말 분위기 깬다.”
“실없는 소리 말고 스트레칭이나 해라.”
“사람이 감상에 젖어 있는데 너무 매몰찬 거 아냐?!”
“배고프다며? 난 배고파 죽을 거 같다. 집 가자.”
이와이즈미가 먼저 스트레칭을 시작하자 오이카와도 배고픔에는 당해내지 못하고 얌전히 스트레칭에 합류했다. 체육관 뒷정리를 할 때는 오이카와가 사방으로 날려댄 공을 주워 담느라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공은 또 왜 이렇게 많은 거야?”
“무슨카와 씨가 신나게 날려댄 덕분이지,”
“누가 했는지 모르겠지만 우린 빨리 치우고 집에 갑시다!”
“어.”
집으로 가는 길 내내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의 마음에 안 드는 점을 마구잡이로 쏟아냈다. 아까 그만큼 화풀이를 해놓고도 질리지도 않고 잘도 떠드네. 이와이즈미는 옆에서 날뛰는 오이카와 덕분에 화를 낼 틈도 없어 오히려 침착해졌다.
“그럼 내일 봐!”
“욕조에서 잠들지나 마라.”
“이와쨩은 우리 엄마예요?”
“헛소리 작작 하고 들어가서 일찍 자라.”
“이와쨩도 오늘 수고했어~”
집에 돌아와 밥을 두 그릇 먹고 욕조에 몸을 담그고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보고 있으니 오이카와가 울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오이카와 토오루가 울면 비가 내린다.
그가 비를 부르는 남자인 것은 아니다. 그가 운다고 비가 꼭 오는 것은 아니었으며, 비가 온다고 그가 울고 있는 것도 아니다. 오이카와 토오루라는 사람는 오히려 쾌청과 어울리는 남자였다.
오이카와가 넘어져 무릎이 심하게 까졌을 때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울었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한참 게임에 몰두해서 깔깔거리는 오이카와의 등 뒤에는 장대비가 쏟아지는 창문이 있었다. 그의 눈물과 비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오이카와가 울면 비가 내린다.
이와이즈미였기 때문에 이 기묘한 상관관계를 발견했다.
접이식 우산을 2개 들고 다니게 된 것은 그 때부터다. 논리적 이해보다는 경험이 주장하는 이 비과학적인 사실을, 그는 고증하려 들기보다 하나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였다.
그럴 수도 있지.
생각을 간단명료하게 정리한 이와이즈미는 그 길로 접이식 우산을 하나 사서, 가방 속에 굴러다니던 다른 우산 옆에 넣어두었다. 밝은 연두색의 새 우산을.
오이카와는 눈에 띄게 여유를 잃어가고 있었다.
세터와 스파이커, 포지션이 전혀 다름에도 오이카와는 우시와카에게 적개심을 불태웠다. 한 세트도 따지 못하고 완패한 결과에 우시와카의 스파이크가 큰 역할을 했다는 건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사실이었다. 같은 경기장에 서서, 우시와카라는 선수를 눈앞에서 보았던 오이카와에게는 그 사실이 더욱 크게 다가왔던 듯하다. 배구와 외모에 있어서는 자존심이 세고 자긍심 가득했던 오이카와에게 있어, 팀 전체의 플레이도 아닌 고작 한 사람에게 절대적인 패배를 당했던 일이 다시없을 굴욕이었던 것 같다.
물론 그것뿐이라면 오이카와가 연습벌레가 되는 수준에서 끝났을 터였다.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은 올해 입학한 카게야마 토비오 때문이다.
지고 싶지 않아. 강해질 거야. 우시와카를 꺾을 거야. 이번 현 대표는 우리야. 오이카와는 이미 목표를 향해 전력으로 달리는 중이었다. 눈앞의 우시와카를 쫓는 것만으로도 필사적이었고 벅찼는데, 뒤에서 쫓아오는 후배까지 나타났다.
감독도 코치도 카게야마의 재능을 칭찬했다. 오이카와에게도 결코 칭찬을 아낀 것은 아니었으나, 오이카와도 제대로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은 2학년이 되고 나서부터였다. 그런데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카게야마에 대한 그들의 평가는 여태 보아왔던 것들과 궤를 달리 했다.
이와이즈미가 보기에도 카게야마는 특출났다. 숙달되어 가는 과정이 남들보다 몇 배는 빨랐다. 공을 타루는 솜씨가 특히 예사롭지 않았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진다는 말이 어울렸다.
오이카와도 다른 사람들보다 몇 걸음 앞서는 편이었지만, 그것은 타고난 운동신경이라기 보단 연구와 연습의 산물이었다. 경기 영상을 분석하고, 실제 경기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시뮬레이션하며 그에 대한 적절한 대응은 무엇일지 고민하고, 실전에서 가능하도록 몇 번이고 반복해 몸에 익힌다.
그 과정을 이와이즈미는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오이카와에게도 천재라고 말하지만, 단순히 타고난 재능이 뛰어나다는 말로만 설명하기엔 모자란 감이 있었다. 오이카와는 그가 가진 재능 이상으로, 자신을 갈고 닦는 데에 몇 배로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오이카와 선배, 서브 가르쳐주세요!”
카게야마가 배구공을 들고 오이카와에게 가르침을 구했을 때, 오이카와는 그것을 거절했다.
다른 후배들이 그렇게 말했다면 알려줬을 것이다. 실제로도 주장으로서도 선배로서도 그는 부원들에게 상냥한 편이었다. 오직 카게야마만 그 상냥함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그가 천재이기 때문이다.다른 사람들에게는 알려주더라도 괜찮다. 여태껏 오이카와가 해온 연습량 이상을 해내야 겨우 따라올 수 있을 테니까. 그들보다 확실하게 앞서 나갈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 알려주는 것에 아쉬움이 없었다.
하지만 카게야마는 달랐다. 그는 오이카와가 한 걸음 나아갈 때 세 걸음 쫓아오는 상대다. 오이카와가 한 달에 걸려 해낼 일을 일주일만에 해내고, 심지어 그것이 대단한 것이라는 자각도 없어 해내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인 듯이 구는 모습은 카게야마가 얼마나 재능으로 꽈꽉 들어찬 인재인지 보여주었다. 언젠가는 오이카와를 따라잡고 말 것이라고 외치는 듯한 그의 무시무시한 성장속도가 오이카와를 더욱 조급하게 만들었다.
빨리, 조금이라도 더 앞으로, 더 강하게, 아직 우시와카도 못 이겼는데, 이젠 후배한테까지 제쳐지는 거야? 싫어. 나는 누구한테도 지고 싶지 않단 말이야…….
그 공포를 가속화시킨 것은 감독의 사고방식이었다.
3학년에 주장에 어디 하나 빠지는 것 없는 선수인 오이카와를 상식적으로 팀에서 뺄 리가 없다, 그런 확신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실력을 가장 우선시하는 냉정하고 무자비한 그의 생각과 행동들을 봐온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다. 자그만치 2년 동안 봐왔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사람 파악하는 데 있어선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민감하고 예민한 오이카와가 눈치 채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어쩌면, 설마, 하지만, 혹시, 우시와카와 싸울 기회조차도 못 받을지 몰라.
오이카와는 그 압박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지니 집중력이 떨어지고 컨디션 난조가 이어졌다. 토스의 정확도도 서브의 성공률도 이전보다 떨어져, 실수가 잦아졌다. 그 결과 오이카와의 연습량은 계속 늘어만 갔다. 몸 상태가 안 좋아 미스가 늘어난 것을 메우기 위해 더욱 연습을 늘리고, 늘린 연습에 지쳐 상태가 호전되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오이카와의 상태가 안 좋아질수록 비가 잦아졌다.
오이카와 때문에 내리는 비라는 건 금방 구분할 수 있었다. 이와이즈미의 시선이 금방 닿는 곳에 오이카와가 없을 때 갑작스럽게 내리는 비는 대체로 그 애가 울어서 내리는 비였다.
각자의 집으로 헤어진 후에 내리는 비는 손 쓸 도리가 없는 편이었다. 심부름거리라도 있으면 그 핑계로 오이카와네 집에 들러보겠지만 그런 게 필요할 때 맞춰서 준비되어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울고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으면서 들이닥쳐 불러내는 것도 참 못할 짓이라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밤이 지나고 잠을 자고 나면 사람은 어느 정도 회복이 된다. 차라리 이 편이 나았다.
정말 골치아픈 쪽은 학교에서 비가 내릴 때였다.
오이카와가 한참 돌아오지 않고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자율연습은 대체로 마무리되고 부원들은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갔다. 문제가 달리 없다면 오이카와는 이때쯤 돌아왔다. “이와쨩, 나 우산 없는데 어쩌지!” 따위의 평범한 말을 하며. 이런 때는 잠깐 감정이 북받친 정도라 찬물로 세수를 하는 정도로 금방 추스른 거라고 이와이즈미는 추측했다.
오이카와가 한참을 돌아오지 않을 때가 있다. 이와이즈미는 우선 주장이 없는 것을 대신해 문단속을 맡아 체육관을 정리하고, 그 다음에는 부실에 가서 짐을 챙겼다. 이와이즈미의 것과 오이카와의 것. 가방을 두 개 챙겨 놓고 의자에 앉아 오이카와를 기다리면 문이 끼익 열리고, 문틈으로 오이카와가 몸을 빼꼼 내밀고 안을 살핀 다음, 안에 남은 사람이 이와이즈미라는 걸 확인하고서야 들어온다.
“이와쨩, 체육관 문이 잠겼어~ 나는 더 연습하고 싶은데…….”
“다 집에 갔거든? 넌 주장이란 놈이 어디서 뭘 하다 왔냐?”
“미남의 개인적인 시간은 묻는 거 아니야, 이와쨩!”
“변비냐?”
저런 헛소리를 하는 걸 보면 기운 좀 났나보다 싶어 이와이즈미는 그 말을 적당히 받아주며 오이카와에게 싸놓은 가방을 던졌다. 오이카와는 그것을 반사적으로 받아들며 투덜댔다.
“그런 실례되는 말을! 프라이버시 침해야!”
“아님 말고. 너 우산은 있냐?”
물론 그 투덜거림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대화를 진행했다. 오이카와도 더 이상 저런 실없는 화제를 붙잡고 있긴 싫은지 저항하지 않고 새 화제에 편승했다.
“없어! 이와쨩은 있지? 우산 같이 쓰자!”
활짝 웃으면서 하는 대답이라는 게 정말이지 뻔뻔하기 짝이 없다. 이와이즈미는 가방 속에서 사두었던 연두색 우산을 꺼내, 이와쨩한테는 우산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저 혼자 소란인 오이카와에게 던졌다.
“빨리 집에 가자, 굼벵카와.”
“너무해!”
“변비카, 읍, 으읍!”
“알았으니까, 그 단어는 그만 꺼내! 이와쨩 더러워!”
연두색 우산을 쓴 오이카와의 옆을 걸으며 하교를 하는 건 무난한 결말이었다.
오이카와를 아무리 기다려도 부실에 돌아오지 않으면, 이와이즈미는 가방을 부실에 두고 우산 두 개를 들고서 오이카와를 찾으러 몸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이카와가 갈 만한 곳은 많지 않다. 아무리 수업이 끝난 후라고 해도 부활동을 위해 남은 학생들이 있는 학교 안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울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까. 게다가 울고 나서 얼굴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으니(오이카와는 집 밖에서는 자기의 겉모습에 매우 신경을 쓰는 귀찮은 녀석이었으므로 저걸 고려하지 않을 리 없다고 이와이즈미는 추측했다.) 화장실 근처일 가능성이 높았다. 부실들이 모여 있을 뿐이라 별다른 공간도 없을뿐더러 학생들이 자주 드나드는 특별동의 화장실에 있을 리가 없으므로, 특별동을 벗어나 본관으로 향했다. 오이카와용 우산을 한 손에 들고 비를 가로질러 본관에 도착한 이와이즈미는 짚이는 곳들을 하나하나 들러 오이카와의 유무를 확인했다.
“오이카와.”
문을 열고 부르면, 오이카와는 곧장 대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화장실 칸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어 자신이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빨리 나와라. 너 때문에 부실 문을 못 잠그잖냐.”
그렇게 말하고 화장실을 나와 안쪽이 보이지 않도록 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까지 걸어간 다음 복도에 등을 기대고 서서 오이카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빨리 나오라고 말은 했지만, 이와이즈미는 한참을 화장실 안에서 부산스럽게 시간을 보내고 나온 오이카와에게 왜 이렇게 늦게 나왔냐고 타박을 준적이 없다. 오이카와도 그에 대해 특별히 사과를 하지는 않았다. 그 침묵은 서로에게 있어서 이곳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모른 척 하자는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부실까지 돌아가는 길의 오이카와는 대체로 조용했다. 이와이즈미도 특별히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저 오이카와가 스스로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복도가 끝나고, 현관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건물 밖이다. 아직도 비는 쏟아지는 채였다. 오이카와는 빈손이었고, 그걸 핑계 삼고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이와쨩, 나 오늘도 우산 좀 빌려줘.”
“우산 맡겨 놨냐? 아주 뻔뻔하네, 이거.”
“우산 두 개 들고 다니는 거 다 알아요.”
“그냥 네 우산이라고 하지 그러냐.”
“아이참, 그렇게 매정하게 말하지 말고~ 가는 길에 내가 라멘 쏠게. 응?”
오이카와가 미안해하며 같잖은 애교로 무마해보려고 하는 걸 보니 기가 차서 화도 안 났다. 오이카와에게 꿀밤을 한 대 먹여주고, 이와이즈미는 가지고 있던 우산을 던져주었다. 제법 힘을 줘서 던진 것을 캐치한 오이카와는 엄살을 피우며 손바닥이 아프다고 찡얼댔으나 이와이즈미가 묵살하자 금방 포기했다.
“그 연두색 우산, 간만이네♪”
접이식 우산을 익숙하게 펼쳤다. 오이카와의 얼굴 위로 연두색 그늘이 졌다. 흐린 하늘의 칙칙함 속에서도 형광연두에 가까울 만큼 밝은 우산의 색은 눈에 띄었다. 그 우산 밑에서 조잘대는 오이카와는 뭐, 나쁘지 않았다.
오이카와가 사준다는 저 라멘, 단순히 우산에 대한 감사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중학교에 올라온 오이카와에게는 먹구름이 끼어있었다. 언제 화창했던 적이 있었냐는 듯이 흐리고 어두웠고, 때때로 비가 쏟아졌다. 오이카와가 처음 배구를 시작했을 때의 모습을 아는 이와이즈미에는 그 변화가 더더욱 크게 다가왔다. 오이카와는 분명 즐거워 죽겠다는 듯이 공을 가지고 놀던 애였다.
지금은 그의 발목까지 빗물이 찰랑이는 것 같았다. 그래도 비는 그치지 않았고, 빗물은 줄기는커녕 차올랐다. 마치 오이카와가 저 아래로 가라앉는 것처럼…….
하늘은 흐린 뒤 맑음
전일본중학배구선수권대회 미야기현 예선전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 실전 경험을 늘리겠다는 생각인지 감독이 부지런히 다른 학교와의 연습시합을 잡아뒀다. 주전 세터였던 오이카와에게 그 시합 하나하나가 자신을 증명해야하는 시험과 같았다.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부담감, 여기에서 잘 해야 공식전에 나갈 수 있다는 압박, 오이카와의 컨디션 난조를 걱정하는 동료들, 그런 자기를 바짝 쫓아오는 천재 후배까지, 무엇 하나 오이카와에게 안심이 될 것이 없었을 것이다.
이와이즈미는 시합에서 오이카와의 자잘한 미스가 이어지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섣불리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그만큼 오이카와가 몰려있었다. 어떻게 다독여주어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와이즈미가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누가 봐도 명백한 오버워크 중인 오이카와를 스트레칭 시키고 체육관 밖으로 끌어내 집으로 보내는 정도였다. 그건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았다.
처음 연습시합에서 토스의 높낮이가 미묘하게 흔들렸고, 그 다음 연습시합에서는 특기인 서브가 잘 들어가지 않아 평소라면 그리 어렵지 않았을 상대에게 점수를 따내는데 꽤 고전했다. 고전했다고 해도 2 대 0으로 키타가와제일의 압승이기는 했지만, 서비스 에이스로 점수를 많이 얻지 못하는 흐름은 썩 반갑지 않았다. 오이카와도 자신의 토스가 흔들리는 것을 알고 있어서 서브로 그 부분을 만회해보려 했던 것인데 오히려 서브의 실패를 팀플레이로 만회해야하는 상황이 되어 초조함은 극에 달했다.
그 다음 연습 시합에서 오이카와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많은 콤비 미스를 냈다. 토스의 타이밍이 흐트러지고, 동료들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도무지 이쪽이 승기를 잡을 수가 없는 시합이었다. 그것도 오이카와 본인의 실수 연발이 원인이라 본인도 코트 위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것이 훤히 보였다.
여기에선 오이카와의 상태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이카와를 코트에서 빼고 다른 선수와 교체한다는 뜻이다. 교체라는 단어가 지금의 오이카와에게 얼마나 무겁고 끔찍한 족쇄인지 뻔히 알고 있으니, 그 상황에 대면하게 될 것이란 사실만으로도 가장 먼저 고개를 쳐든 것은 걱정이었다.
삐익. 호루라기 소리가 나고 코트 위의 모두가 멈췄다. 심판이 가슴께에서 두 손을 빙글빙글 돌리며 멈추게 한 이유를 알렸다. 이와이즈미는 그 사인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오이카와의 얼굴을 살피거나, 감독을 돌아보기도 전에 감독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카게야마, 네가 들어가라.”
최악의 전개였다. 이와이즈미는 감독의 피가 푸른색일 거라고 단정했다.
직접 경기에 뛸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해 두 뺨이 발그레해진 카게야마와 교체하기 위해 오이카와는 걸어갔다. 교체라는 것만으로도 대미지가 적지 않을 텐데, 주장인 주전 세터를 빼고 넣는 선수가 하필이면 새파란 1학년이었다. 게다가 오이카와가 그렇게 경계하던 카게야마 토비오에게 자신의 자리를 빼앗겼다는 사실이 좋은 방향으로 작용할 리가 없다. 제3자의 입장에서야 연속미스로 휘청거렸던 오이카와에게 머리를 식힐 시간을 주기 위한 전략적 교체로 보이겠지만, 오이카와는 절대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시합을 하는 내내 카게야마에게 바톤 터치를 하고 벤치로 걸어가던 등의 1번 숫자와 둥글게 쳐진 어깨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아니나 다를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계속 찾아오는 소나기에 이젠 다들 적응한 참이라 가방 속에서 우산을 자연스럽게 꺼내들었다. 온갖 색깔의 우산들이 빗속에 아롱지며 교문으로 향했다. 물론 돌아가는 무리 중 어디에도 오이카와는 보이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연습 시합이 끝나고도 기어이 체육관에 남았다는 모양이었다.
이와이즈미는 하교하는 무리에서 슬쩍 빠져나왔다. 발걸음을 돌린 곳은 체육관이다. 문을 열기도 전에 안쪽에서 쾅쾅 소리가 났다. 오이카와의 서브가 바닥을 때리는 소리다. 이와이즈미는 문을 열었다. 오이카와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숨소리가 거칠었다. 그 사이에 적지 않은 수의 서브를 날려댔는지 네트 건너편에 굴러다니는 공의 숫자가 적지 않았다. 눈으로 공을 대충 헤아려도 열 개가 훌쩍 넘었다.
오버워크 하지 말라고 잔소리라도 해야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곳에는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 말고도 또 한 명이 더 있었다. 그것도 연습중인 오이카와가 반길 수 없는 불청객이다.
“오이카와 선배.”
검은 생머리에 큰 눈이 오이카와를 향해 저돌적으로 시선을 꽂아 넣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힐끗 쳐다보았다가 아무것도 못 본 사람처럼 공바구니로 시선을 옮겼다가, 네트 건너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번에 정리하면 너무 많으니까 일단 공을 좀 주워올까…….”
오이카와는 카게야마가 제 옆에 서있지 않는 양 굴었다. 대답도 물론 해주지 않았다. 완전히 투명 인간 취급이었음에도 카게야마는 굴하지 않았다. 노골적인 무시에도 불구하고, 오이카와가 공을 정리하고 다시 풀쩍 뛰어 서브를 넣기까지 옆에 서서 그걸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사이사이 “오이카와 선배.”하고 부르는 것을 뻬먹지도 않으며. 그래도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에게 대답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걸 카게야마도 눈치 챈 것 같았다. 카게야마는 다시 한 번 오이카와를 부른 뒤, “서브 좀 가르쳐주세요.” 기어이 오이카와의 속을 뒤집어놓았다.
사람 감정을 알아채는 감이 없는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둔할 줄은 정말 생각도 못했다. 이와이즈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한 것인지도 모르는 순진한 얼굴의 후배에게 한숨을 쉬기도 전에 오이카와의 이상 상태를 포착했다. 설마, 저 녀석…! 직감적으로 몸이 먼저 내달렸다. 오이카와에게 단 몇 걸음으로 가까워지고, 손을 뻗었다. 공기를 가르는 녀석의 손이 카게야마에게 닿기 전 손목을 겨우 잡아챘다.
“진정해, 이 멍청아!”
“……미안.”
오이카와는 고개를 푹 숙였다. 본래도 허여멀건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카게야마, 오늘은 이만 끝내자.”
이와이즈미는 우선 카게야마를 내보냈다. 순순히 물러난 카게야마는 공손하게 허리를 숙여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서 체육관을 나섰다. 드르륵. 타악. 문이 열렸다 닫히고, 이곳에 남은 것은 이와이즈미와 오이카와 둘 뿐이다. 오이카와는 자기가 저지를 뻔 한 일에 자기가 제일 놀란 듯했다.
이와이즈미는 여태 잡고 있던 손목을 놓아주며 말을 덧붙였다.
“오늘 교체는 머리를 좀 식히란 뜻이잖아. 조금 여유를 가져.”
화를 찍어 누르듯 제 입술을 깨물고 있던 오이카와가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지금 내 실력으론 시라토리자와를 이길 수가 없는데 어떻게 여유를 가져! 나는 꼭 이겨서 전국대회에 가고 싶어. 이기기 위해서 더….”
하는 말 하나하나가 까끌까끌했다. 날이 안 서있는 게 없었고, 무엇보다 절박했다. 오이카와가 얼마나 초조하고, 다급하고, 위태로운 상태인지 생생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그놈의 ‘나, 나’… 아주 시끄러워 죽겠다!”
들리는 게 마음에 들지 않다 못해 없던 짜증을 유발해서 이와이즈미는 제 화에 씩씩거리는 오이카와의 못난 얼굴에 자신의 이마를 갖다 박았다. 뻐어억! 두 머리의 충돌에 엄청난 소리가 났다. “으윽?!” 오이카와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와이즈미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오이카와의 멱살을 틀어쥐고 “시합은 너 혼자 하냐?! 웃기지 마, 이 멍청아. 네 실력이 곧 팀의 실력이라고 착각한다면 나한테 맞을 줄 알아!” 하고 열심히 지적했더니 “이미 때렸잖아!” 오이카와가 무지막지하게 억울하단 표정을 지었다. 오이카와의 코에서는 앞선 폭력의 증거로 코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지만 이와이즈미는 깨끗이 무시하고 제 할 말을 마저 쏟아냈다. “1대1로 우시와카를 이길 녀석은 우리 학교에 없어! 하지만 배구는 여섯 명이서 하는 거야! 상대가 천재 1학년이든 우시와카든 ‘6명’이 강한 쪽이 강한 거라구, 이 멍청아!”
여섯 명이 강한 쪽이 강하다. 오이카와는 그 한 마디를 몇 번이고 되뇌었다. 뭔가의 주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중얼거리다가 급기야 후후후 웃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있으니 아까 어디를 잘못 부딪친 건 아닌지 걱정이 고개를 쳐들었다.
“미안, 박치기가 너무 셌냐? 괜찮아?”
“하아 으응. 뭐랄까 꼭… 갑자기 무적이 된 기분인데.” 그러고서 덧붙인 말이라 게 “그나저나 이와쨩, 할 줄 아는 욕이 ‘멍청이’밖에 없어?” 이 모양이다. 사람이 기껏 걱정해줬더니 얄미운 소리나 골라 하는 오이카와의 표정이 간만에 개운하게 개어있었으므로 이와이즈미도 걱정을 옆으로 덜어내며 밉상인 오이카와의 말을 평소처럼 받아 넘겨주었다.
“오른쪽도 마저 터트려주랴?”
그리고 오이카와는 컨디션 난조를 극복하고 중학교 마지막 대회에서 제 기량을 마음껏 발휘했다. 시라토리자와중학교와는 결승에서 만났다. 처음으로 한 세트를 따냈다. 결과는 시라토리자와에 이어 2위, 오이카와 개인은 최우수 세터상을 받았다. 이쪽은 그렇게 바라는 전국진출티켓을 쥐고도 기뻐하는 기색 하나 없이 당연하다는 듯 단상에 서있는 우시지마의 앞에서 최우수 세터상을 받으며 다시 한 번 오이카와가 불타올랐다.
“고등학교에 가면 그때는 꼭 그 자식을 눌러줄 거야…!”
“당연하지.”
이 날은 이와이즈미도 오이카와도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울었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그 날부터 날씨의 변덕이 눈에 띄게 줄었다.
오이카와가 울면 비가 내린다. 그렇지만 이제 그의 하늘은 파랑을 되찾기 시작했으니 괜찮을 것이다. 오이카와를 지켜보던 이와이즈미는 그렇게 예감했다.
“아오바죠사이에 갈 거야. 이와쨩도 같이 갈 거지?”
“세이죠면 좀 아슬아슬해도 합격 가능한 곳이니까.”
“이와쨩은 열혈운동바보 같이 생겨서 의외로 성적이 괜찮단 말이지. 세이죠, 이 근방에서 손가락에 꼽는 편차치 높은 고등학교인데.”
“지금 싸움 거는 거냐? 코피 정도는 또 터트려줄 수 있는데.”
“스톱! 주먹 스톱! 폭력반대!” 이와이즈미가 들어 올린 주먹을 피해 달아나며 오이카와가 깔깔 웃었다. 시험에서 떨어지면 절대로 용서 안 해줄 거니까 열심히 공부해줘~ 늘어지는 말꼬리는 보송보송하게 말라 햇볕 냄새가 났다.
벚꽃이 만개한 봄이 되고, 새 교복을 입고 아직 낯선 아오바죠사이고교의 교문을 함께 지나게 되었다. 이번 년도의 신입생을 환영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있고, 아직 흰색 블레이저 교복이 어색한 학생들에게 부의 가입을 권유하는 선배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고만고만한 키의 학생 무리에서 머리가 불쑥 튀어나와있는 큰 키의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는 특히 운동부의 표적이 되었는데, 웃는 얼굴로 돌려주는 칼같은 대답은 선배들이 끈질기게 달라붙어 꼬실 틈조차 내어주지 않았다.
“죄송하지만, 저흰 이미 배구부에 가입신청서 냈어요.”